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파양호 대전 (문단 편집) == 개요 == >진우량은 태조가 온다는 소식을 듣고, 포위를 풀고 파양호(鄱陽湖)에서 역습하여 싸웠다. 진우량의 군대를 스스로 60만이라 칭했는데, 큰 전선을 이어 진(陣)을 형성하고, (배) 누의 높이가 10여장이나 되어서, 서로 이어진 것이 수십이나 되었으며, 깃발과 창, 방패들이 바라보면 실로 산과 같았다. >---- >'''명사(明史) 태조본기(太祖本紀)''' [[파일:external/www.book-hotel.cn/1147570832.jpg]] 1363년, [[중국]] [[장시성]]에 있는 [[포양호|파양호(鄱陽湖)]]에서 [[주원장]](朱元璋)이 이끄는 군단과 [[진우량]](陳友諒)의 군대가 맞붙은 [[전투]]. 이 전투의 승리로 주원장은 전중국 최강자의 자리에 가까워지게 되었다. 이 전투의 결과로 진우량은 완전히 몰락해버렸고, 진우량이 몰락한 시점에서는 또다른 군웅인 [[장사성]](張士誠) 역시 주원장의 상대가 될 수는 없었다. 이러한 면으로 볼 때, 파양호 대전의 결과로 주원장의 [[황제]] 등극은 사실상 확정되었다고 볼 수 있다. 주원장 일생 일대의 격전이었던 것. ||[[파일:external/pds2.exblog.jp/e0094583_928016.jpg|width=300&align=right]]|| ||[[주장(도시)|주장]], [[난창]], [[징더전]] 등의 도시가 보인다|| 그리고 파양호 전투는 중국 [[역사]]에서는 매우 보기 드물게, 당대 최강의 군웅들이 모든 전력을 걸고 [[수군]](水軍)을 동원해서 겨룬 전투다. 물론 그전까지 수군이 전쟁에서 동원되지 않은 적은 없었지만, 이 정도 규모의, 그리고 역사적 의미에서 이렇게 커다란 싸움의 수전(水戰)은 오직 [[적벽대전]](赤壁大戰)밖에 없다[* 게다가 [[적벽대전#s-3.5.1|항목]]에 나오지만 적벽대전도 대규모 수전이었는지에 대해 논란이 있다.]. 재미있게도 [[나관중]]의 [[삼국지연의]]에서 등장하는 적벽대전의 묘사가 이 파양호 대전의 모습에서 그 모티브를 따 온 것이다. 그리고 파양호 자체도 적벽대전 자체와 약간 관련이 있다. 연의에서 적벽대전이 본격적으로 일어나기 전 '주유가 파양에서 수군을 조련하다가 손권의 부름을 받고 왔다'라는 내용이 나오는데, 이 파양이 바로 파양호이다. 또한 이 싸움에서는 분명하게 [[화약]] 병기가 사용되는 언급이 나온다. 이제 수전에서도 화포가 사용되면서, 수전과 해전(海戰)의 양상은 분명하게 바뀌게 되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